믿음, 풍랑 속 일상
왜 겁을 내느냐?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마르 4,4) 예 수님께서 꾸짖으십니다. 사실 좀 섭섭한 꾸짖음입니다. 풍랑에 처한 우리가 당신을 믿고 깨우는 것 말고 달리 무 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뒤집힐 듯 출렁이는 배 위에서 살려달라 아우성치는 것 말고, 인간이 달리 무슨 기도를 해야 합니까? 그러나 복음은 풍랑 속 우리에게 여전히 낯설 수밖에 없는 주님의 초대를 나누고 있습니다. 그것도 오늘은 침묵, 마음의 소리로.
두려워하지 말라!'
그럼 우린 곧장 이렇게 외치지요. '예, 주님! 그럼, 풍랑 을 당장 멈추어 주십시오. 저희를 곧바로 살려주십시오.' 확인하고 또 확인하는 조바심. 어쩌면 우리로서는 당연한 요구입니다.
그러나 다시 한번 낯선, 예수님의 굼뜸이 이어집니다. 당장 풍랑이 일어 다 죽게 생겼는데, 삶의 위험이 가득한 이 위태한 순간, 예수님은 일상을 사시는 것으로 우리의 외침에 응답하십니다. 파도가 삶을 집어삼키는 순간에도 자던 잠을 계속해서 주무시다니. 세상이 혀를 차며 예수가 망해 버렸노라 우리의 위태함을 감지하며 놀리는데, 하던 식사를 계속하시고, 어둠 속 잠자리에 드시며, 어제처럼 다시 일어나시는 주님. 예수님은 폭풍우가 몰아치는 이 특별한 날에도 늘 '오늘'을 살아내고 계십니다. 예수님께 믿음이란 풍랑을 멈추는 기적이 아니라 풍랑 속에서 삶을 계속해 살아내는 내는 답답함, 무엇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평화라는 듯.
인간의 살갗은 증폭기입니다. 바깥바람을 백배, 만배로 크게 감지하여 마음에 전하는 증폭기, 삶의 작은 바람이 우리 마음에 아리고 깊은 상처를 내는 이유입니다. 그간 우리가 해왔던 삶의 경험은 육신의 철석같은 믿음(?)이 되어 모든 것을 증폭시킵니다. 살아보니 삶은 실로 위험한 항해, 매사 조심하며 두리번거리라고 자식을 가르쳐왔습니다. 그러나 참 믿음은 증폭기를 부숴버리는 선택, 주님을 닮은 참믿음은 사나운 바람조차 십분의 일, 백분의 일로 누그러뜨립니다. 믿는 자는 작은 위험을 과장하지도, 큰 시련에 짓눌리지도 않습니다. 참믿음은 폭풍우에 소스라치거나 기적 같은 미풍을 자랑하지 않습니다. 때론 거세고, 때론 잔잔한 삶의 숱한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 것. 언제나 하느님께서 함께 계신다는 믿음은 땅의 바람이 아 니라 하늘의 한결같음을 바라봅니다.
주님께서 오늘은 풍랑을 멈추어주셨습니다. 그러나 풍랑이 우리를 삼키는 날도 옵니다. 죽음도 결국 오고야 말지요. 그러나 우리 구원은 여기 오늘의 풍랑을 벗어나는 안도 따위가 아닙니다. 크고 깊은 평화, 오직 주님 안에서 영원한 복을 간직하리라는 희망이 우리의 길입니다. 우리 주님이 출렁이는 뱃고물에서 주무시고 계십니다. (마르 4,38 참조) 믿음은 마지막 그날까지 언제든 두려움 없이 주님과 함께 일상을 살아내는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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